‘아름다움’은 절대적인가, 아니면 문화가 만든 기준인가
우리는 흔히 “예쁘다”, “잘생겼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학교에서, TV에서, 인터넷에서 사람들의 외모나 스타일을 보며 아름다움을 판단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예쁘다고 느끼는 얼굴이 있을까?” “아름다움에는 정답이 있을까?” 어떤 사람은 하얀 피부와 큰 눈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또 어떤 문화에서는 구릿빛 피부와 강한 인상이 더 멋지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일까, 아니면 우리가 사는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 낸 기준일까? 이 글에서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바뀌어 온 아름다움의 모습을 살펴보며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름다움은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어 왔다
지금 우리는 날씬한 몸, 또렷한 이목구비, 하얀 피부를 아름답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오래전부터 항상 같았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아름다움의 모습도 크게 달라져 왔다.
예를 들어, 유럽의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통통한 몸이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당시 그림을 보면 여인들의 몸이 지금보다 훨씬 풍만하게 그려져 있다. 이것은 살이 찌는 것이 부와 건강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부족한 시대에 살이 많다는 것은 잘 먹고 잘 산다는 뜻이었고, 그래서 그런 몸이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반대로 오늘날에는 날씬한 몸이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건강, 운동, 자기 관리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텔레비전과 SNS에는 마른 몸매의 연예인과 모델이 많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저게 예쁜 몸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아름다움의 기준은 그 시대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헤어스타일과 옷도 마찬가지다. 조선 시대에는 단정한 머리와 한복이 아름다움의 기준이었고, 1970년대에는 긴 머리와 청바지가 멋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개성 있는 스타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렇게 보면 아름다움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함께 움직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문화에 따라 아름다움의 모습도 다르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나라와 문화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우리가 “당연히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양에서는 키가 크고 눈이 깊으며 콧대가 높은 얼굴이 멋있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하얀 피부와 부드러운 인상이 더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각 지역 사람들이 오랫동안 살아온 환경과 역사, 그리고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일부 지역에서는 몸에 문신을 하거나 장식을 하는 것이 아름다움의 표현이다. 그 문양과 색깔은 그 사람의 나이, 부족, 지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은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는 우리가 익숙한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어떤 문화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답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주름과 흰 머리가 지혜와 경험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반면 어떤 사회에서는 젊음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 나이가 들면 아름다움이 사라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역시 문화가 만든 생각이다.
이처럼 아름다움은 자연에서 정해진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따라 만들어진다.
미디어와 사회가 아름다움의 기준을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TV, 광고, SNS 같은 미디어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우리는 매일 화면 속에서 비슷한 얼굴과 몸매를 반복해서 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렇게 생겨야 예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광고에서는 늘 피부가 하얗고, 몸매가 날씬하며, 웃는 사람이 등장한다. 아이돌과 배우도 비슷한 스타일이 많다. 이런 모습을 계속 보다 보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비교하게 되고, 때로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사회가 만들어 낸 이미지일 뿐이다.
과거에는 미디어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기준이 점점 비슷해지고, 동시에 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기준이 자연에서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미지가 반복되며 “정답”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진짜 아름다움은 다양함 속에 있다
만약 아름다움에 단 하나의 정답만 있다면, 세상은 매우 답답할 것이다. 모두가 같은 얼굴, 같은 몸, 같은 스타일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고, 그것이 바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우리가 다른 문화와 다른 시대의 예술 작품을 보면, 아름다움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알 수 있다. 통통한 몸, 검은 피부, 주름진 얼굴, 강한 인상, 부드러운 인상 모두 어떤 시대와 문화에서는 아름다움이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기준도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만들어 낸 기준에 가깝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한 가지 모습만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보다,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의 웃음, 태도, 친절함, 자신감도 아름다움의 일부이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도 함께 볼 때, 우리는 더 넓은 의미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아름다움에 대해 배우는 방식도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동화책, 만화, 광고 속에서 특정한 모습의 사람들을 “예쁜 사람”으로 접해 왔다. 공주나 주인공은 대개 비슷한 얼굴과 몸을 가지고 있고, 그렇지 않은 인물은 조연이나 웃기는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특정한 모습만을 아름답다고 여기게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얼굴과 몸, 피부색과 스타일이 존재하며, 그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답다. 이런 다양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남을 더 존중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아름다움이란 누군가가 정해 놓은 규칙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